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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 일상 이야기와 경험

[시작] 무식해서 용감했던 미국으로 가는 첫 걸음

by newyork.tom 2020. 7. 12.

<브런치 작가 뉴요커의 글 #02> 2019년 4월 24일

 

미국? 지구본에서 어디쯤 있는 나라였더라?


는 우리나라의 각 종 지리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사회과부도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지루한 수학, 과학시간에는 종종 사회과부도를 펼쳐두고선 우리나라 대한민국 지리를 보며 꼭 가보고 싶은 지역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둘 정도로 애착이 많았다. 내가 그 시절에 세계 지도에 그렇게 관심이 컸다면 어땠을까? 

 

부끄럽기도 하지만  정확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뉴욕은 동부인지 서부인지조차 관심이 없을 정도로 미국은 그저 남의 나라였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대학교 호텔경영을 전공을 하고 식음료쪽 아르바이트와 고객서비스 관련 아르바이트를 매우 열심히 하며 살아왔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가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다음날 전주의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 무작정 이력서 한 장 들고 찾아가서 해당 점주와 즉석에서 호쾌하게 면접을 보고 합격하고 약 2년을 일하면서 신발을 5번을 새로 사야할 정도로 밑창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뛰어다니며 성실히 일을 했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 누가 묻는다면 단연 불확실한 미래와 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작금의 취업난은 필자가 겪어던 취업난에 비하면 훨씬 더 어렵고 암울하고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


는 사회생활의 멘토인 외삼촌들의 조언을 참 잘 따르는 편이다. 의 삼촌들 역시 금수저 환경이 아닌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노력에 노력으로 끈질기게 역경을 해쳐나가시며 지금의 위치에 계시기에 내가 롤모델로 삼고 배우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으신 분들이다. 그런 삼촌들께서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 환경을 걱정하시며 내게 해외로의 대학원 진학을 권유를 해주셨다. 철이 없게도 나는 당시 돈이 얼마나 귀중하고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유학쯤은 그냥 내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선택사항'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지방 도시인 전주에서 살면서 주변에 유학을 가거나 어학연수를 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없었던 당시 환경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삼촌께 권유를 받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큰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의 고집에 의한 불효와 그 때 흘린 어머니의 눈물들은 수량으로 가늠할 수 없을만큼 무거웠고, 또 후회스러웠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에와서야 그렇게해서 유학을 왔던 것이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도 한숨과 함께 웃으며 '그래, 뭐 잘 되었으니 다행이지' 할 수 있지만, 불과 몇 년전, 한국행 비행기값이 비싸고 아까워서 6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가서 그 사이 나이가 드신 부모님의 모습을보며 남몰래 방에서 엉엉 울어댔던 나에겐 유학시절 내내 저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 욕심을 채워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에겐 가족이 먼저일까 나의 성공이 먼저일까?'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나란 사람은 내 부모님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이기적이었다 (의 부모님은 전주에서 오랜 시간동안 음식점을 운영하시면서 부지런함과 어른공경, 이웃 봉사 등으로 주변에서 평판이 매우 좋은 분들이시다. 아버지께서는 현재도 의용소방대 총무로 봉사를 하시고, 어머니는 요리 솜씨를 주변 불우 이웃이나 노인 복지 행사 등에 아낌없이 재능기부를 하고 계신다).는 아직도 기억나는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멘트를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 인생 망치면 어머니가 책임지실거에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오고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고 후회는 한도 끝도 없는 필자다. 지금 필자가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말은 여러번 순화해서 '정신나간놈' 뿐인 것 같다. 인생을 망치면 책임을 지실거냐고? 그것이 과연 필자를 평생 믿어주시고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니께 던질 말인가?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믿어주셨는지 뒤늦게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가 6년만에 한국에 갔을 때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뵈어 듣게 된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담배를 피우다가 근신(정학보다는 한단계 아래의 봉사활동 개념)을 여러번 당했을 때 한번은 어머니가 학교로 불려오셨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은사님께서는 의 잠재능력을 전혀 못쓰고 방황만 하는 것 같다며 너무나도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하소연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제발 담배를 끊고 공부를 하게 만들어달라고 필자의 어머니께 부탁을 하셨다고 한다. 은사님께서는 내가 말씀해주시기를 그 때 필자의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은 시간이 걸려도 꼭 반드시 내가 자랑스러워 할 아들로 성장할 겁니다. 담배를 피우는 자식을 보는 제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이 반드시 이러한 어른들의 마음을 깨닫고 스스로 이겨내고 돌아올겁니다' 라고 하셨단다.그런 어머니께 망언을 하고 밀려오는 후회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철없는 행동과 언행으로 부모님 속을 매우 상하게 하기도 했지만, 저 어리석은 질문만큼 한이되어 남는 문장도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의 경제적 사정과 나의 유학 욕심에는 괴리가 너무나도 컸다. 우선 학비와 생활비, 7000만원의 잔고증명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였던가 부모님께서는 결국 당신들의 노후자금, 나의 결혼자금, 보험해약, 대출 등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끝내 내 고집을 들어주셨다. 내 자식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분명 아닐 것이다. 지금에서야 그러한 부모님에 큰 감사함을 느끼면서 평생을 부모님께 잘해야겠다고 늘 다짐해본다. 
드디어 준비시작
필자와 어머니는 결국 합의에 이르러 강남의 유학원을 찾아갔다. 당시 는 강남의 유명 어학원에 등록하고 가끔 '땡땡이'를 치며 쪽방 고시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메르세데스벤츠 마케팅팀 산하에서 일하면서 회사의 홍보용 차량들을 관리하며 언론 및 미디어, 드라마 촬영 등에 차량을 제공하는 아주 특별하고 재밌었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이다 (필자의 자동차 사랑과 겪었던 여러가지 경험들은 나중에 구독자분들 중 관심이 있는분들이 계시면 별도로 집필하도록 하겠다).강남역 주변을 출퇴근하고 학원을 오며가며 번화가에 위치한 한 유학원을 찾아갔고 필자와 이름이 아주 비슷한 (마지막 한 글자가 다른데 그마저도 같은 초성이었다) 대표님 덕분에 호텔경영과 서비스쪽으로 도전해볼만한 학교들을 추천받아 지원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분야에서 미국은 코넬을 넘 볼 학교는 없는 것 같지만 학비 또한 넘사벽이라 가성비가 높은 학교를 고르게 되었다. 필자의 마지막 고민은 유명한 도시에 한국인이 많은 학교인지 아니면 조용히 공부하기 좋은 지역의 학교인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네바다주의 UNLV vs 로드아일랜드주의 JWU

당시 UNLV는 호텔경영이나 카지노, 식음관련의 유학으로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학교였다. 지금도 단연 훌륭한 학교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UNLV 출신으로 승승장구하는 분들을 당연 응원하는 필자이다 (출신은 아니지만 잠재적 출신자의 정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러한 친근감이 있다). 다만,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 공부한다면 뭐하러 굳이 미국까지 가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학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당시 어학원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학부 100명을 가정하면 40명 이상이 한국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들어서 걱정이 매우 컸었다. 그리고 여러 다른 학교도 있었지만 (예를 들어 아이와와 주립대) 이상하게 Johnson & Wales (https://www.jwu.edu/) 라는 학교가 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크게 들었었다. 물론, 유학원 대표님이 강력 추천을 해주셔서 그냥 그곳에 꽂혀서 다른곳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부분이었겠지만.학교는 미국의 CIA (Culinary Insistute of America)와 더불어 요리로는 양대산맥을 구성하는 학교이고 Hospitalty 부문도 실용적으로 탄탄하기로 유명한 학교이기 때문에 이곳 또한 한국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학교다. 캠퍼스가 여러곳이 있는데 그 중 로드아일랜드 주의 프로비던스 캠퍼스가 본교이다. JWU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나서 알아보는 프로비던스라는 도시는 정말이지 '교육의 도시' 그 자체였다. 인근의 보스턴이야말로 하버드, MIT 등 교육 도시의 표본이지만 프로비던스도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Brown Univ, 미술과 디자인 부분으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RISD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등이 있어서 교육의 도시로 유명하다. 필자의 성격상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 당시에는 브라운과 리즈디, 특히 리즈디에 한국인들이 많다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그 때 만나서 같이 추억을 나누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만난 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들이었다. 어쨌든 필자는 JWU라는 곳에 토플과 GMAT을 보고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2개월의 의무 영어 고급반 수업을 듣는 '조건부' 합격을 하게 되었다. 학교의 장사일 수 있으나 그 수업들이 학교의 수업과 학교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Johnson & Wales University는 1914년 설립

 


필자는 기억상 제주도와 도서의 몇몇 섬들을 빼고는 대한민국 영해 밖을 나가본적이 없다. 비행기표? 도착해서 홈스테이할 곳으로 이동? 미국에서 사용할 휴대폰? 모두 유학원에서 해결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돈아깝고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 당시에 유학원의 대표님과 담당 실무진 분들은 나에겐 구세주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런저런 준비를 하여 미국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카톡도 스마트폰도 없어서 통신사 대리점에가서 내 연락처를 모두 프린트로 출력해달라고하여 종이에 출력된 연락처들만 가지고 나의 '싸이월드'는 활짝 열어둔 채 대한민국과 안녕을 준비했다.

성공해서 아버지 꼭 벤츠 태워드릴게요    

가 미국행을 가기전 마지막 저녁에 웃으며 드린 말이다. 지금 그 약속을 지켰냐고? 한국은 벤츠가 미국보다 월등히 비싸다. 작은 벤츠 말고 그래도 중형급 이상은 꼭 태워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필자는 오늘도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언젠가는 기필코 '가난하게 출발해서 아버지 벤츠 태워 드린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 것을 독자분들 앞에 다짐하는 바이다.

취득한 MBA 학위이다. 본명이 공개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통곡의 이별
2017년 5월 14일에 필자는 결혼을 하였고, 결혼식 당시 읽었던 편지 내용중에 나를 울게 했던 구절이 있다. 유학을 가겠다고 떠나던 날 출국장 유리문 밑으로 살짝 보이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어머니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아들을 바라보았다는 구절이었다.2010년 7월 30일은 바로 그 날이었다.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바닥에 머리를 대고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매번 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 정도로 내 머릿속에 아주아주 선명한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 때서야 나는 나의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는 미국에 한국마트가 있는지도, 미국인들은 이불과 베개를 쓰는지도 알아보지 않을 정도로 정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정말로 이불과 베개, 전기장판까지 들어있는 이민가방과 대형 케리어 3개를 준비했다. 당시 한국에는 인터넷전화가 매우 신선한 시대였는데, 필자는 기상천외하게도 왠지 '인터넷이 되는 상황이라면 전세계 어디서든 인터넷 전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전화를 챙겼고 그 덕분에 엄청난 통화비를 절감한 신의 한수였다. 지금이야 보이스톡, 페이스톡들이 있지만 당시는 국제전화 초당/분당 얼마 등으로 여러 업체들이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인터넷 전화를 챙긴 것은 스스로 천만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을 선택이었다. 그 후 나는 미국에서 열혈 인터넷 전화 홍보대사가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편도 140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거금의 항공권을 유학원 통하여 받고 말이다. 다만, 이해가 가는 것은 7월말~8월이면 유학생들이 대거 개강을 맞아 한국에서 미국행을 택하는 시즌이라 비행기표가 비싸다. 그래도 편도 140만원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도 경유지가 2번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 레이오버도 8시간이라 무척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바다 바깥을 나간 여정 및 새로운 미국 생활의 이야기들은 다음 속편들을 통해서 추가로 쓸 예정이다.

안녕! 대한민국!
   -2010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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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우 ChoHow

미국 11년차의 일상 및 직장 생활의 노하우를 전하는 조하우! 브런치 작가 (뉴요커)로도 활동중입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건너온 미국에서의 삶과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 미국 취업, 생활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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