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뉴요커의 글 #18> *제가 작성한 글이며, 브런치에서 작성한지는 시일이 경과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조금 비참하고 처절하지만 부자가 아닌 환경에서 미국에 빚을 내서 유학 와서 (물론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서 빚을 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환경이라 부모님께는 큰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부자가 아닌 사람의 미국 생활이 어떤지를 쓰고자 한다.
최근 들어 미국 이민에 대한 관심도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고 들었고, 여러 이민 설명회나 성공 사례들은 주로 좋은 부분이나 장밋빛 미래만 그려주는 경향이 있어서 나의 글을 조금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의 삶도 부자가 아니라면 어려움은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부자가 아닌 삶을 산다는 것은 한국에서 상상하지 못할 또 다른 어려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의 글은 주로 미국 동부의 뉴욕이나 보스턴 인근의 대도시 인근의 삶을 다룰 예정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다.
살인적인 월세
미국에는 전세가 없다. Rent라고 불리는 월세만 존재할 뿐이다. Deposit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보증금은 존재하는데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거나 월세의 2~3배를 요구하는 등 집이나 아파트 소유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 렌트는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한국의 원룸과 함께 침실 혹은 방의 개수에 따라서 1 bed, 2 bed room 등으로 나뉜다. 대도시인 뉴욕이나 최근 IT 붐으로 인하여 사람이 몰리는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의 경우 스튜디오 월세가 한화로 300만 원 정도이며, 침실 1개인 원베드의 경우 400~500만 원이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미국 연봉이 높더라도 주거비용으로 나가는 비용은 정말 살벌하다.
나는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학 때도 시골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월세를 아끼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매월 70만 원씩 내면서 공부를 했었다. 방학이면 너도나도 한국으로 놀러 갔던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월세 나가는 것도 아깝고 부모님께 비행기 표를 손 벌리는 것도 죄송스러워 여름 학기 수강신청을 하여 졸업을 앞당기는 데만 집중했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게 되고 비자 상황 때문 등 여러 상황 때문에 가족을 6년 넘게 못 보기도 했었다. 주변에서 '10년 동안 한국을 못 갔다' 등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겪어보니 상황이 공감도 되고 비참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에 살아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독종인 것 같다. 그렇게 독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뉴욕에 취직해서도 월 150만 원을 내면서 반지하에서 생활을 했다. 그것도 맨해튼 시내가 아닌 멀리 떨어진 수도권 지역에서 말이다. 너무 습해서 여름이면 곰팡이 청소와 씨름을 해야 했다. 그때는 뭘 그리 절절매며 살았는지 에어컨 하나 살 생각도 못 했고, 침대도 다른 사람이 이사를 하며 새로 사면서 버릴 매트리스를 받아다가 사용하곤 했었다. 먹고 놀러 다니고 하는데 썼던 돈 조금 아껴서 집 관리하고 좀 더 쾌적한 환경에 사는데 썼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빠듯하고 힘들었고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신혼집으로 맨해튼 강 건너에 교통이 매우 좋은 곳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었다. 월세는 250만 원이었지만 나도 수영장과 헬스장, 사우나, 골프연습장 그리고 멋진 로비가 있고 모든 가전 기기가 새것인 꽤 괜찮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뉴욕에 출퇴근하는 호사를 한 번 누려보고 싶었다.
'신혼집이니까'라는 철없는 이유와 함께. 어쨌든 새로 지은 아파트이고 윗집, 옆집 모두 비어 있어서 한 7개월은 정말 그래도 좋은 삶을 누렸다. 윗집이 이사 오자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에서 말도 안 되는 층간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계약만료를 2개월 앞두고 고민하던 차에 이사 온 옆집은 재계약을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줬다. 왜냐하면 나는 250만 원을 내면서 옆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살 자신도 없었고, 그런 아파트를 럭셔리 아파트라고 부르는 교만한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내 돈을 주기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렇다. 뉴욕 지역은 월세도 살인적이지만 그렇다고 내는 돈에 대비해서 시설이 훌륭하지도 않다. 요즘 맨해튼 시내에 완전히 새로 지은 빌딩의 경우 좀 덜하지만, 대부분 뉴욕 인근의 건물들은 지은지 오래된 건물들을 리노베이션 하거나 용도 변경 등을 하여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뉴욕의 월세가 너무나도 아까운 이유도, 그리고 월세가 더욱 터무니없이 높다고 느껴지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같은 돈을 다른 지역에서 모기지를 받아서 다달이 낸다면 아파트 방 몇 칸이 아닌 주택을 새로 짓고도 남을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집이나 콘도 구매를 할 수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아까운 월세를 내야 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신분에 얽힌 여러 가지
미국의 보험 시스템에 대해서는 요즘은 널리 알려져서 길게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미국에서는 보험이나 돈이 없으면 아파서도 안된다. 물론 최소한의 케어는 받겠지만 외국인의 신분이라는 것이 큰 발목을 잡게 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올 때 유학생 보험을 가지고 오거나 미국에서 가입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오신 분들 중 그 돈마저 아끼려고 처음에 증빙용으로만 가입했다가 해지하고 오는 경우가 있었고, 몸이 아파서 병원에 실려갔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 청구서를 받아들었다는 얘기를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인터넷에도 그러한 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과장이 되었을 수 있겠지만 그대로 한국으로 도망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는 외국인 뿐 아니라 미국 시민들 또한 보험과 돈이 없으면 아파서도 안된다는 말이 적용될 정도로 미국의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자가 아니라면 더욱 건강과 안전에 유념해야 하지만 먹고사는 음식, 안전할 수 없는 환경들이 이들을 더욱 부자와 양극화 되게 만드는 미국의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대도시의 경우는 조금 덜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간다면 미국 생활에서 차량 소유는 거의 필수이다. 물론 최소한의 대중교통은 연결이 되어 있겠지만 매우 드물고 불편하며, 가까운 거리라도 늘 기준은 '차량으로' 가까운 거리인지라 걸어서 다니는 데에는 집 근처 편의점 가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외국인의 경우 차량을 구매하기도 쉽지가 않다. 미국은 신용사회, 즉 개인의 credit과 상환 회피 및 도주를 우려하여 신분 점검을 하고 론을 해주는 사회이다. 신용이 없고 신분이 없다면 내가 다른 글에서 언급한 '유령' 취급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신용사회임과 동시에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현금이 많은 부자라면 아무리 비싼 새 차도 걱정 없이 구매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발품을 팔아서 값싸지만 잘 굴러가는 중고차를 찾는 방법뿐이다. 나는 그래도 엔진과 미션에는 큰 문제가 없던 중고차를 골라서 다행이었다. 물론 바퀴가 일정 깊이의 물고인 곳만 지나면 핸들이 잠겨버리는 어처구니없는 매우 위험한 특성은 있었지만 말이다. 사고 한 번 안 나고 4년을 잘 타고 다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신분 때문에 들어가게 되는 막대한 비용은 단연 변호사 선임비용 및 서류 진행 비용이다. 나 또한 최근에 영주권을 얻기까지 회사가 지원해주는 금액을 제외하고도 1,3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합법적인 신분 유지에 사용했었다. 부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이토록 아깝고 허망하게 나가게 되는 돈은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금이 여유로운 사람들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금액일 테지만 말이다.
더욱 많은 것을 찾아보고자 한다면 여행을 가더라도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서비스 역시 미국에도 많기 때문에 부자가 아니라서 오는 괴리감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만 오늘의 글은 지난 내 경험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느껴봤던 부분들에 대해서 짧게 다뤄본 것이다.
앞서 월세 부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사실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부자가 아니라서 가장 힘들고 비참했던 것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소중한 내 가족을 못 보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한 번 다녀오면 100 ~ 150만 원이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값은 내 상황에서 감당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오려고 했어도 방학 때마다 한국에 가는 다른 유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깊은 자괴감과 함께 향수병이 생겨왔었고, 그래서 더욱 그러한 나 자신을 이겨내려고 가족들에게는 생전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한 번 내뱉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만 같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학 온 내 상황에 감사해야 함에도 배은망덕하게 '내 팔자는 왜 이러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될까 봐 끊임없이 나 자신을 컨트롤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처절하고 치열하게 나 자신을 조율했던 내 모습이야말로 미국에서 부자로 살 수 없었던 내가 가장 비참했던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는 지금도 부자가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이 버는 것도 아니며, 그저 먹고 싶은 것과 입고 싶은 것을 입으며 사치 없이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래도 지금 이런 환경과 발전에 크게 감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지난 시절 너무 비참했던 나 스스로에게로부터 몇 년 전에 발송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젊은 세대이지만 나보다 더욱 젊은 세대들에게 이제 '노력'이라는 단어는 보장된 미래를 가져다주는 희망이 아닌 그저 기성세대들의 고리타분한 조언이고 의미 없는 단어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믿어왔고, 또한 지금도 믿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내가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이 문구를 믿는 한 언젠가는 나도, 아니 적어도 내 자식만큼은 부자로써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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