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뉴요커의 글 #46>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며, 브런치에서 작성한지는 시일이 경과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미국 의회에서 비서관으로 국회의원을 모시고 있는 친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루하루가 전쟁같이 위험한 출퇴근길을 보여줬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새로운 시대, 즉 '뉴 노멀'이 온다며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을 생각했지만, 지금의 이 사태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친구는 백악관에서 10분 거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으며, 시위대의 함성과 쉴 새 없이 터지는 최루탄, 연막탄, 공포탄 등 각 종 총탄 소리로 마음 편할 날이 없어 보였다. 친구와 나는 정치적 관점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같았기에 우리는 긴 말하지 않아도 이 시위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 상기 사진과 영상은 친구에게 직접 전달받은 원본이니 무단 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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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영상으로 여러 가지 소식과 노하우를 전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써 이 소재에 대해서 글을 쓰기를 망설였다.
사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너무나도 극명하게 달라 보일 수도 있고, 격한 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소재였기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자칫, 나 스스로 옳거나 그르다고 믿는 신념이 그 누군가에겐 온전치 못한 사상이 되거나 조롱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에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었다.
오늘은 뉴욕 현지시간 6/2 화요일이고, 미국에서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blackouttuesday라고 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사진을 올리고 그저 묵묵히 유명을 달리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서 심도 깊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사회 운동이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날이다. 나는 오늘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내 인스타그램에 동참하는 사진을 올렸다 (물론, 본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뒤덮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blacklivesmatter는 사용하지 않았다. 관련 운동에 동참하시는 분은 해당 태그를 사용하지 말아야 더 부각되어야 할 내용들이 덮이지 않으니 유의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사실 나는 어제 급하게 영상을 통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견해와 더불어 친구가 보내준 사진과 영상들을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하였다.
건강의 토론의 장이 되고 싶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어떠한 일련의 사건들은, 보는 이에 따라 그리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역사적 평가나 결론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다른 견해가 있다면 댓글을 통해서 남겨달란 요청을 하였고, 내 채널이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무시하는 곳이 아닌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더 나은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소통의 창구가 되고 싶었다 (물론 이제 갓 구독자 200명을 넘어선 유튜브 채널이 무슨 힘이 있으며, 토론의 장이 될까 싶었지만 그것이 내가 현 사태와 더불어 유명을 달리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방식이 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도 용기 내어 내 견해와 시위에 대한 내 관점을 적기로 하였다.
첫 번째, 인종차별은 그 어떠한 이유에도 옳지 않다.
OPT 문제를 다룬 영상들처럼 많은 댓글이 달리진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댓글이 있었다. 바로 이 사건이 어째서 인종차별인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미국에서 현 사태가 더욱 커지고 부각이 되는 것은 비단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2020년이라는, 인종차별이 대놓고 일어나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믿어왔던 미국인들에게 아직도 나아진 것이 없으며, '백인에게도 그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유튜브나 여러 소스들을 통해서 미국 공권력이 법 집행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이러한 사건들이 흑인들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도의 차이가 있으며, 유독 흑인들이 이러한 공권력에 강 대 강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에릭 가드너나 이번 조지 플로이드처럼, 그리고 수많은 흑인 희생자들 중에서는 크게 저항하지 않거나 순순히 경찰의 지시에 따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하였다. 이번 사건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사건 이후로 미국 전역에서 가장 큰 시위와 폭동으로 번진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는 무자비한 경찰에게 수십 번을 외쳤다. 지금 시위대들이 여러 피켓들에 적어두고 외치는 그 한마디의 문장을 말이다.
I can't breathe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관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유를 알 수도 없는 그 목조름은 8분이나 넘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는 그의 어머니를 찾으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현장에 있던 4명의 경관은 모두 해고가 되었지만 사회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상황을 두고 인종차별임을 증명할 수 있는지, 이것이 왜 인종차별이라고 표현이 되는지를 묻는다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없지만,
반대로보면 인종차별이 아니고서는 딱히 그 경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인종차별이 아니라면 인권유린 혹은 인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은 생명경시의 자세라고 밖에 보이지 않으며, 이는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경관의 모습이 절대 아니다.
인종차별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이 사건으로 전파되는 여러 사회적 운동과 인식의 변화가 선한 영향력으로 번졌으면 한다 (아,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서 내가 매우 화가 났던 것은, 그 경관 바로 옆에 멀뚱멀뚱 서서 주위를 경계하는 아시아인 경관의 모습이었다. 한국인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본인도 소수 인종으로써 그러한 사태를 어떻게 그냥 방관만 하는지, 심지어 경계를 하다가 조지 플로이드의 얼굴이 보이는 장소로 이동했음에도 그 상황을 말리지 않았는지,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아시아인의 망신이라며 뉴스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옳지 않다고 해서, 폭력은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촛불시위, 그리고 약간의 소요사태는 있었지만 비교적 온전하게 종료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재소환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라는 미국에서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싶겠지만 사실 미국은 '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이 부분은 세 번째 단락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순수하게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시위가 밤이 되자 폭동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First Penguin 효과
집단생활을 하는 펭귄들의 경우 빙하에서 물로 뛰어들 때 단체로 망설이다가, 가장 처음 즉, 퍼스트 펭귄이 다이빙을 하면 우르르 따라서 뛰어들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용기 있는 자를 설명할 때, 혹은 군중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언급되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서 누가 그 퍼스트 펭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넓은 땅덩이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퍼스트 펭귄이 수많은 돌격대로 변신하게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건이 발생된 미네소타와 몇몇 대도시에서만 진행되던 시위가 140개 이상의 타운과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그야말로 '폭동' 수준이 되었다.
방화로 시작되어, 약탈, 파손,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이것이 과연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길이며, 그가 추모될 수 있는 방법인지 물음표가 생기고 수많은 여론이 등지게 된 계기들이 발생되고 있다. 폭력이 없는, 그 누구도 시위로 인해서 피해를 받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는 시위였다면,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울림'은 훨씬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 갑절의 '메아리'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위대에 백인들도 있지만 주로 과격 행동은 흑인들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에) 흑인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이 지긋지긋한 고리를 끊기 위해서 또다시 폭력을 선택했고, 결국 이는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현재 커뮤니티들에 백인들이 다는 댓글들을 보면 가관인 경우가 많다. '당신들이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 '당신들은 영원한 노예다' 등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 번째, 1992년 LA 폭동, 그리고 2020년 지금
흑인들이 동양인들, 유독 한국인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는 역사적인 사건에 기초한다. 바로 1992년도에 발생한 LA 폭동 사태 때문에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백인들에게 뺨 맞고 동양인에게 화풀이한 사건으로 회자되는 이 사건으로 인해, 2020년 지금 LA는 극도의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그 악몽을 재현하지 않고자 주에서는 주 방위군을 긴급 동원해서 LA 한인타운을 보호했고,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며 지켜주겠다고 선포해서 1992년만큼의 피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는 수많은 한인 상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과연 1992년과 지금의 사태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변치 않았을까?
내 사견으로는 흑인들이 억압된 심정,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표출하는 방법에서는 92년 사태 때와, 아쉽게도 변한 것이 없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표현으로, 그리고 비폭력과 평화적인 방법이 전하는 힘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흑인들은 그 억하심정을 참지 못하고 온갖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6/2 (화) 아침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인 '소호 Soho'라는 거리에는 온갖 상점들의 유리창이 파손되고 물건이 남아있질 않았으며, 명품샵, 은행, 약국, 휴대폰점, 심지어 비타민과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상점까지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그러한 상점들이나 기업들의 주인들이 대부분 백인이라는 것인데, 참으로 속이 터질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물론 사실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중에는 어느 인종보다도 더 앞서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백인이나, 한국인처럼 다른 인종인 경우도 많다. 흑인이 주인인 곳만 털지 않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역차별'이 생기는, 내로남불 소리를 들어도 할 말없는 그런 생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면에는 미국 사회의 큰 '격차'에 있다. 미국은 '부의 규모'가 굉장히 크고, 개인이 벌어드리는 소득도 큰 편이지만 사회의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부의 격차'가 존재한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그러한 부의 격차는 여실히 드러났다. 대부분의 화이트 컬러 직종에는 아직도 백인, 아시아, 남미 계열의 사람들이 흑인에 비해서 훨씬 많은 편이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흑인들이 많이 종사를 하는 편인데,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 화이트 컬러 직종의 사람들은 직업을 유지하며 집에서 근무를 해왔지만, 흑인들의 경우 순식간에 직업을 잃었고 소득이 적었기 때문에 그들의 실업수당 또한 금세 동이 났다. 또한, 예를 들면, 같은 뉴욕이더라도 백인 밀집 지역과 흑인 밀집 지역의 코로나 감염도나 사망률이 큰 차이를 보였으며, 이러한 이슈들은 결국 부의 격차로 귀결되며, 코로나가 가져온 시대적 계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직장을 잃고, 돈도 없고, 역사적으로 무시를 당해왔고, 화는 나고,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참아왔던 분노는 마침에 부를 향한 약탈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코로나가 만든 마스크 착용은, 그동안 공공장소 '복면금지법'을 지켜오며 치안 유지를 했던 미국 문화에서는, 그러한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겐 갑옷과 같은 존재가 되어 더 큰 폭동 사태로 번지게 된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 또한, 그들을 옹호하고 정당화할 생각은 털 끝만큼도 없다. 분명하게 잘못된 행동이고, 잘못된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저 이러한 상황을 분석해보고 아쉬웠던 것은, 결국 이러한 모든 사태는 흑인들에 대한 교육과 소득의 불평등에서 발생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등 큰 진보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미국은 또 다른 선택을 하며 시계를 되돌려놨다. 버락 & 미쉘 오바마라는 훌륭하게 교육을 받은 엘리트 흑인이 나왔지만, 그것은 일반 흑인들에겐 정말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였을 뿐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지금도 학군이 좋은 동네나 고급 아파트에는 흑인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고, 값비싼 사립학교에서도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수가 적다. 그렇다 보니 사회 전면적으로는 평등과 인종차별 금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러한 문화나 정치를 선도할, 그리고 부를 창조할 기업 경영자의 자리에는 영향력 있는 흑인들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흑인들의 과격한 시위를 번외로 두고 보자면, 시위를 대하는 사회의 반응은 그래도 아주 많이 성숙했다. 1992년 사태 이후에는 흑인을 욕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억울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비난을 줄 곧 받아왔다. 이번 사태의 경우 '시작점'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같은 '백인'이라는 관점에서 시위대를 존중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플로리다의 한 경찰서는 전원이 경찰서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했고, 미시간주의 한 타운 보안관은 시위대를 향해 헬멧을 벗고,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는 경찰로써 당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기도 했다. 그 시위대는 보안관과 동료 경관들을 받아주며 함께 폭력 없는 아름다운 가두행진으로 시위를 마무리하였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종합해보자면, 2020년은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고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위에서 군림하던 미국의 끝도 없는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최악의 한해이다. 미국 현지에서 10년을 거주하고 있는 나는, 지금처럼 답답하고 우울한 적이 없었다. 마치 내가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잘못된 허상을 향해 죽자고 달려왔던 허무함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무한 긍정마인드를 가진 나는, 아직은 영주권자로 외국인 신분인 나로서 시위 전면에 나서서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 내가 전할 수 있는 영상, 그리고 글로써 내 주장을 전하고, 내가 속한 이 사회가 불평등, 인종차별,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사회로 변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자고 다짐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일면식도 없지만, 거대한 이 나라에서 '소수' 인종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조지 플로이드, 그리고 살아가야 할 '나'라는 같은 '인간'이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기념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2020년 6월 2일 화요일 'R.I.P. George Floyd'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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